본문 바로가기

오늘의 포스팅

더 좋은 카밋을 위하여

반응형

카밋(Car Meet). 누군가에게는 아주 생소한 단어겠지만, 익숙한 누군가에게는 마음을 설레게 하는 단어일 것이다. 국내에서 널리 알려진 개념도 아닌 카밋은 얼마 전 부정적인 이유로 화두에 올랐다. 지난 4월, 한 유튜버가 서울 도심에 위치한 주차장에서 카밋을 진행하며 주민의 안위와 도로 상황을 면밀히 살피지 못해 시민들의 불편을 초래한 것이다. 해당 카밋은 결국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과 서울시 수사과 직원에 의해 해산되었다. 인터넷에는 카밋 문화 자체를 향한 비난이 쏟아졌다.


자동차 문화를 기반으로 다양한 기획을 진행하는 에이전시 브랜드를 운영하며, 카밋 문화가 국내에 긍정적인 방향으로 뿌리내리길 바라는 내 입장에서는 고백도 못 해보고 차인 기분이 들 수밖에 없다. 아니, 만나보지도 못하고 거절당한 기분이라고 표현하는 편이 더 어울리겠다. 사실 일반의 오해와는 달리 카밋은 시끄럽게 자동차를 튜닝한 불량배들이 소음을 내며 동네를 폭주하는 모임이 아니다. 문자 그대로 자동차를 타고 특정 장소에서 만나는 모임이다. 믿을 수 없겠지만, 차(茶)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만나서 차를 감상하는 다도회와 근본적으로는 크게 다르지 않다는 의미다. 여기까지 읽은 독자들 중 궁금증이 솟은 사람이 있을 것이다. 대체 어디서, 언제 그 많은 사람이 모이는 것이냐고. 사실 카밋에는 딱히 정해진 규칙은 없다. 규모, 시간대, 장소, 콘셉트 등은 정하기 나름이다. 보통은 주말 이른 아침이나 늦은 밤에 모이는 경우가 많다. 모이는 장소가 주로 공영주차장이기 때문이다. 주차장을 이용하는 다른 이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 택하는 시간대다. 그렇다면 어떤 이들이 모이는 것일까. 이전까지 한국에서는 동호회 단위로 모이는 경우가 많았다. 자동차 동호회라 하면 보통 특정 차종의 동호회인 경우가 많아, 같은 차종을 가지각색으로 꾸며 쭉 주차해둔 모습을 많이 볼 수 있었다. 최근에는 분위기가 조금 다르다. 특정 차량보다는 커뮤니티나 크루 단위로 모이는 게 보편화되며 모이는 차량의 종류가 다양해지는 추세다. 참가자들의 면면도 변하고 있다. 주제가 ‘자동차’이다 보니, 과거에는 남성이 대다수 참여했지만 최근 들어서는 여성 참여자도 늘고 있다. 홀로 등장하는 이들이 많았던 과거에 비해 현재는 가족이 함께 참여하는 경우도 있다.


가장 궁금한 질문은 이것일 터다. 그래서 대체 모여서 뭘 하냐고. 사실 특별할 것은 없다. 차 구경하며 수다 떨기. 정말 그게 전부다. 아마 차에 별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면 의구심이 생길 것이다. 그 아침 일찍, 혹은 그 늦은 밤에 모여서 몇 시간 동안을 그저 모여서 떠들고 있다고? 그렇다. 믿을 수 없겠지만, 정말이다. 우리는 그만큼 차를 보는 일을 좋아한다. 게다가 당연한 이야기지만 음주와도 거리가 멀다. 내가 애지중지하는 이 어여쁜 차를 안전하게 집까지 모셔다 드려야 하니까. 나의 말초적인 기쁨보다는 차가 항상 우선이다. 그게 초현실적인 풍경처럼 보일지도 모르겠다는 사실은 알지만, 어쩌겠는가. 정말 그런 것을. 이런 포인트에서 해프닝도 생긴다. 일부 유부남 참가자들은 배우자의 의심을 사기도 했다고 말했다. ‘남자들끼리 그 밤에 모여서 몇 시간 동안 이야기만 하고 온다고?’ 충분히 합리적으로 가질 만한 의심이다. 그런 의심은 배우자가 동행해 카밋을 경험하고 나면 잠잠해진다. 정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기 때문이다. 그만큼 카밋이라는 문화 자체가 일반인에게 낯설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이 심심하기 짝이 없는 취미를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은 전 세계 각지에 서식한다. 아니, 오히려 한국에는 이제 막 카미터들이 첫 서식지를 만들고 있는 상황이다. 유럽이나 미국, 혹은 일본처럼 자동차산업의 역사가 길고 성숙한 곳에서는 개체수도 많고 활동도 활발하다. 잘 알려진 영국의 ‘굿우드 페스티벌’은 귀족이 자기 사유지에서 시작한 카밋이 세계적인 페스티벌로 발전한 경우다. 콘셉트도 다양하다. 한겨울 스위스의 얼어붙은 생모리츠 호수 위로 미끄러지는 차들을 구경하는 ‘더 아이스(The Ice)’, 일본 도쿄 다이칸야마에 위치한 복합문화공간 ‘T-Site’의 주차장에 그날의 주제에 맞춰 수많은 차가 모이는 ‘모닝 크루즈(Morning Cruise)’ 등이 대표적이다.
좀 더 캐주얼한 카밋의 본거지는 미국이다. 특히 내가 거주했던 캘리포니아 지역은 세계적으로도 자동차 문화가 크게 발전한 곳이다. 일단 자동차를 소유하고 관리하기에 날씨가 좋다는 점이 역할을 했을 것이고, 결정적으로는 부자가 많은 지역이다 보니 비교적 값비싼 물건인 자동차를 컬렉팅하고 관련된 문화나 활동이 발전하기에 적절했다. 이쪽 동네에서 가장 흔한 카밋의 형태는 카즈 앤 커피(Cars and Coffee)다. 카즈 앤 커피는 일요일 이른 새벽에 개최되는 카밋의 보통명사로, 도넛 가게가 입점해 있는 조그만 미국식 몰 주차장에 모이는 것이 전통이다. 참가자들은 커피 한 잔과 도넛으로 이른 새벽의 허기를 달랠 수 있고, 도넛 가게 입장에서는 오픈과 동시에 매출을 올릴 수 있으니 상부상조인 셈이다. 동네마다 크고 작은 여러 개의 카즈 앤 커피가 있고, 참여하는 차량의 종류도 제각각이다. 나름대로 멋지게 꾸민 최신 전기차부터 희귀한 클래식 카까지, 개성이 각각인 차들이 한자리에 모이는 것이다.




최근 들어서는 자동차 마니아에게만 국한된 방식이 아닌, 일반 대중들을 끌어들일 수 있는 방식으로 카밋을 기획하고 개최하는 전문적인 브랜드들도 생겨나는 추세다. 공영주차장이 아니라 부둣가에 위치한 물류 창고나 영화 촬영 스튜디오, 공장 부지 등에서 몹시 아티스틱한 콘셉트를 바탕으로 전문적인 카밋을 진행하는 것이다. 이런 브랜드들은 적극적인 기획을 통해 카밋을 멋진 ‘전시’ 영역으로 넓혀 자동차 문화에 관심 있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일반 대중도 매력을 느낄 수 있게 해준다. 이런 브랜드 중 가장 핫한 것은 아마 ‘루프트게쿨트(Luftgeku¨hlt)’일 것이다. 이는 독일어로 ‘공랭식’을 뜻하는데, 이름답게 이 쇼 브랜드는 공기로 엔진을 식히는 공랭식 엔진을 장착한 포르쉐를 주제로 한다. 2014년 미국 로스앤젤레스 베니스에 위치한 데우스 카페에서 소규모로 시작한 이들의 카밋은 현재 전 세계 수만 명이 참가하는 규모로 발전했다. 쇼장에 가면 유명 아티스트들은 물론 유명 인사들도 심심치 않게 만나볼 수 있을 정도다. 물론 이 정도 규모쯤 되면 직접 자동차를 가지고 가지 않고 그저 관람을 위해 참가하는 것도 가능하다. 나는 루프트게쿨트의 쇼를 2017년과 2022년에 두 차례 직접 관람했다. 쇼를 위한 장소 선정은 물론, 아트 디렉팅이나 굿즈 도안들까지 뭐 하나 허투루 한 것이 없었다. 동호회 모임에서 시작한 카밋이라는 문화가 ‘아트’의 경지에 이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였다.


반면 한국에서 즐길 수 있는 카밋은 흔하지 않다. 앞서 언급한 사건 등 부정적인 이유로 색안경을 끼고 바라보는 시민들이 많은 것도 사실이다. 국내에서 자동차 기획 에이전시 브랜드를 운영하는 동안, 자동차를 정말 좋아하지만 그걸 겉으로 드러내기 꺼리는 이들을 심심치 않게 만났다. 한국에서 ‘자동차를 좋아한다’고 말하면 철부지처럼 보이게 될까 봐 말하기 조심스럽다는 것이다. 무슨 말인지 알기 때문에 내심 씁쓸했다.
마음 놓고 참여할 수 있는 멋진 카밋을 기획하고 운영하기 위해서는 신경 써야 할 부분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적합한 장소와 콘셉트, 차량 큐레이션 등의 선정 문제는 오히려 쉬운 부분에 해당한다. 가장 어려운 것은 주최 측, 참석자, 관찰자 모두가 행복하게 즐길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드는 것이다. 디테일한 고민이 필요한 것은 이 때문이다. 각각의 책임과 역할이 제대로 이뤄져야 훌륭한 카밋이 이뤄질 수 있다.
카밋을 향한 자동차 애호가들의 뜨거운 관심은 분명 자동차를 애정하는 한 사람으로서 반가운 일이다. 그러나 그 날것의 열정이 조금은 다듬어져야 하는 시기라고 본다. 동시에 국내 카밋을 바라보는 외부의 시선도 조금은 더 너그러워지길 바란다. 좋은 카밋의 예시를 늘려 인식을 바꾸는 것이 급선무일 것이다. 그러다 보면 언젠가는 한국에서도 세계적인 주목을 받는 카밋이 열리는 날이 오지 않을까.

정영철은 자동차 문화를 주제로 한 기획 에이전시 브랜드 ‘에레보’의 대표다. 카클럽 공간인 ‘에레보 신사’도 함께 운영 중이다.



https://bltly.link/5LXiqgn

더 좋은 카밋을 위하여

카밋(Car Meet). 누군가에게는 아주 생소한 단어겠지만, 익숙한 누군가에게는 마음을 설레게 하는 단어일 것이다. 국내에서 널리 알려진 개념도 아닌 카밋은 얼마 전 부정적인 이

bltly.link

https://bltly.link/5LXiqgn

더 좋은 카밋을 위하여

카밋(Car Meet). 누군가에게는 아주 생소한 단어겠지만, 익숙한 누군가에게는 마음을 설레게 하는 단어일 것이다. 국내에서 널리 알려진 개념도 아닌 카밋은 얼마 전 부정적인 이

bltly.link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