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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NS는 정말 우리를 바보로 만들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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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한탄한다. 모두가 소셜 미디어로 연결된 초연결 사회에서 집단은 똑똑한 지성이 아니라 어리석은 바보가 되어가고 있다고 한탄한다. 한탄에는 근거도 있다. 소셜 미디어가 사람들을 바보로 만든다는 수많은 연구 결과는 지금도 발표되고 있다. 최근 노스캐롤라이나 대학의 연구에 따르면 장기간의 소셜 미디어 이용은 사람을 둔하게 하고, UC 샌타바버라의 연구팀이 발표한 내용에 따르면 소셜 미디어는 사람들의 편견을 심화시킨다. 우리 모두는 소셜 미디어의 등장 이후 지속적으로 바보가 되어가는 중이다. 정말?

여기에 대해 이야기하기 전에, 내가 가장 좋아하는 SF 소설인 〈파괴된 사나이〉에 대해 언급해야겠다. 갑자기 웬 SF 소설이냐고? 일단 들어보시라. 박찬욱 감독이 좋아한다고 밝힌 소설 중 하나이니 알아둬서 나쁠 거 없다. 알프레드 베스터가 1952년 발표한 이 소설은 정말이지 SF 역사에 남을 걸작이다. 배경은 24세기다. 인류는 태양계의 행성들로 이미 진출했다. 타인의 마음을 읽을 수 있는 텔레파시도 실용화됐다. 모두가 텔레파시를 쓸 수 있는 건 아니다. 어떤 사람들은 텔레파시 능력을 타고난다. 주인공이자 텔레파시 능력자인 재벌 총수 벤 라이히는 라이벌 그룹 회장을 살해한다. 텔레파시 능력자이자 경찰 총경인 링컨 파웰은 다른 능력자들을 총동원해 벤 라이히를 추적하기 시작한다.
알프레드 베스터는 문학적 ‘불꽃놀이’라고 불릴 정도로 현란한 문체로 유명한 작가다. 클라이맥스에서는 아예 문자의 배열과 편집의 장난으로 독자의 정신을 마구 뒤흔든다. 만약 당신이 SF 소설에 딱히 관심이 없더라도 이 걸작은 읽어야 한다. 나는 이 소설을 30여 년 전 처음 읽었다. 타인의 마음을 읽어내려 시도하거나 방해하는 초능력자들의 대결을 본격적으로 그린 첫 번째 SF 소설 중 하나였을 것이다. 나는 생각했다. 타인의 속마음을 읽을 수 있다면 얼마나 편리하고 좋을까. 누군가에게 고백하기 전 미리 생각을 들여다볼 수 있다면 찬란한 플러팅 실패율을 그나마 줄일 수 있을 거 아닌가 말이다. 그렇다. 나는 텔레파시 능력을 가지고도 고작 연애 생각이나 하는 그런 인간이다. 이 글을 읽는 당신도 딱히 다르지는 않을 것이다.


24세기는 이미 왔다. 지나치게 일찍 와버렸다. 우리 모두는 어느 정도의 텔레파시 능력이 있다. 그 능력은 21세기에는 ‘소셜 미디어’라고 불린다. 스티브 잡스가 스마트폰을 발명할 때 그는 인류를 새로운 차원으로 진화시킬 거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것이 우리를 더 나은 존재로 만들어줄 것이라 확신했을 것이다. 빌어먹을 스티브 잡스. 그는 오히려 생각의 지옥을 창조했다. 모두가 스마트폰을 손에 들고 소셜 미디어 계정을 만들자 알프레드 베스터의 텔레파시 지옥이 열렸다. 〈파괴된 사나이〉의 주인공들은 종종 지나치게 많은 타인의 생각이 밀려오는 고통을 겪는다. 그들에게 텔레파시는 초능력이자 업보다. 주인공들은 때로 가짜 텔레파시를 보내 타인의 마음을 조종하거나 교란한다. 그렇다. 이건 소셜 미디어 시대를 반세기 전에 미리 묘사한 예언서나 마찬가지다.
소셜 미디어가 갓 발명됐을 때 우리는 집단 지성의 힘을 믿었다. 수많은 사람이 자신의 생각을 실시간으로 공유할 수 있는 시대는 진정한 지적 민주주의를 불러올 거라 믿었다. 기대는 박살 났다. 이제는 누구도 소셜 미디어로 시작된 초연결 사회가 집단 지성을 진화시킨다고 믿지 않는다. 지난 10여 년간 우리가 얻은 것은 정치적 훌리건과 그들이 퍼뜨리는 가짜 뉴스와 비과학적 선동가들과 사람을 죽음으로까지 몰고 가는 조리돌림의 향연이다. 소셜 미디어를 발명한 사람들조차도 근심에 사로잡혀 있다. 실리콘밸리 사업가이자 〈인터넷 원숭이들의 세상〉이라는 책을 쓴 앤드루 킨은 소셜 미디어의 대중이 오히려 아마추어 지식이나 퍼뜨리면서 질 나쁜 정보나 확산하고 있다고 말한다. 구글 전 CEO 에릭 슈미트는 지난 몇 년간 지속적으로 소셜 미디어 규제를 소리 높여왔다. 그는 몇 년 전 “바보들과 미친 사람들을 위한 앰프 역할을 하는 지금의 소셜 네트워크 환경은 우리가 의도한 것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우리는 점점 바보가 되어가고 있는 걸까? 스스로 설정한 타임라인의 에코 챔버에 갇힌 채 점점 더 미성숙한 아이처럼 되어가고 있는 걸까? 나 역시 그렇게 생각하며 소셜 미디어를 열 때마다 나는 내가 잘 알지도 못하는 누군가의 틀린 의견을 보며 가슴을 치곤 했다. 분노에 휩싸여 댓글을 달곤 했다. 그리고 쉬이 결론을 내렸다. 소셜 미디어는 인류의 지적 능력을 오히려 감퇴시키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고 말이다. 스티브 잡스와 잭 도시와 마크 저커버그는 먼 훗날 인류를 퇴화시킨 안티크라이스트로 남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생각을 고쳐먹게 된 건 2022년 싸이월드 모바일 앱이 출시된 직후였다. 수백만 엑스세대와 마찬가지로 나 역시 과거의 보석함을 여는 기분으로 싸이월드를 되살렸다. 찬란한 나의 젊음이 거기에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찬란한 젊음은 무슨. 20대의 나는 찬란하게 멍청한 인간이었다. 되살린 몇몇 글들을 읽다가 절망했다. 소셜 미디어 중독자인 지금과 마찬가지로 당시 나는 싸이월드 중독자이자 PC 통신 중독자였다. 매일매일 머릿속에 채워진 잔인할 정도로 미숙하고 미약하고 미비한 생각들을 정말이지 아낌없이 배설하고 있었다. 지금 이렇게 잘난 척하며 무려 〈에스콰이어〉 같은 고급 잡지에서 돈을 받고 글을 쓰는 나라는 인간의 20대는 그저 지적 원숭이에 불과했다. 나는 숨을 몰아쉬며 싸이월드를 다시 폐쇄했다. 누구도 그 글을 발견하거나 발굴해서는 안 될 일이었다.

사람들은 소셜 미디어 때문에 멍청해지는 것이 아니었다. 우리는 모두 원래 멍청했다. 다만 그 시절에는 우리의 멍청함을 세상에 적극적으로 알릴 플랫폼이 없었을 따름이다. 소셜 미디어가 등장하자 우리는 서로가 멍청한 존재라는 사실을 마침내 깨닫게 됐다. 그러니 윌 스미스가 토크쇼에서 한 그 유명한 말, “저도 열네 살 땐 멍청했어요. 하지만 제가 열네 살 땐 트위터도 페이스북도 없었죠. 그래서 멍청했지만 방구석에서 은밀하게 멍청할 수 있었죠”라는 말은 진정으로 정곡을 찌르는 명언이었던 것이다.
소셜 미디어 시대가 오기 전 나는 수많은 불특정 타인의 생각을 읽을 능력이 없었다. 내가 읽을 수 있는 생각이라곤 고작해야 정말로 내 옆에 존재하는 가족과 친구들의 말과 미묘한 표정을 통한 간접적 생각뿐이었다. 그래서 나는 텔레파시 능력을 원했다. 젠장. 나는 정말이지 잘못된 능력을 원했던 것이다. 〈파괴된 사나이〉 마지막에 주인공 벤 라이히는 정신병동에서 외친다. “들어줘. 내 말을 들어줘, (텔레파시가 없는) 일반인들! 당신들은 이것이 어떤 것인지를 배워야 해. 어떻게 작용하는지를 배워야 해. 장벽을 무너뜨리는 거야. 베일을 걷어내는 거야. 우리는 당신들이 볼 수 없는 진리를 볼 수 있어. 진리. 즉 인간의 내부에는 사랑과 신뢰, 용기와 친절, 관용과 희생 정신밖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나머지는 모두 당신들 자신의 맹목적인 장벽에 불과해. 언젠가는 우리 모두 마음과 마음, 가슴과 가슴을 터놓고 서로를 이해할 수 있는 날이 올 거야.” 미안하지만 벤 라이히는 틀렸다. 우리는 모두 바보였다. 과거에도 바보였다. 지금도 바보다. 대신 소셜 미디어를 통해 마음과 마음, 가슴과 가슴을 터놓고 서로가 바보라는 사실을 매일매일 더 잘 이해하고 있을 뿐이다. 24세기는 너무 빨리 온 것이다.


김도훈은 글을 쓰는 사람이다. 〈씨네21〉 〈geek〉과 〈허프포스트〉에서 일했고, 책 〈우리 이제 낭만을 이야기합시다〉 〈낯선 사람〉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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